2025년 5월 27일의 기록
건전지 세 묶음을 사 왔다. 집에서 필요한 만큼 쓰고, 남은 건 회사로 가져가려 했다. 내가 쓸 AAA는 이미 보관함에 넣어 두었고, 아내에게 손에 든 건전지를 보여 주며 필요하면 쓰라고 했다.
아내는 몇 개가 필요하다고 했지만, 몇 개인지는 말하지 않았다. 새 묶음을 뜯으면 회사에 가져갈 수 없으니 “집에서 몇 개나 쓸 거야?” 하고 물었다. 답이 없다. 다시 물어도 대답 대신 어버버하며 애매하게 넘긴다. 화와 같이 답답한 열불이 올라왔다.
나는 내 생각을 온전히 말로 옮기지 않았다.
- 질문에 대한 답을 바란다고 했지만, 실은 내가 원하는 답의 방향과 모양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고, 그 답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.
- 무슨 뜻에서, 어떤 건전지가 얼마나 필요하고 얼마나 남는지는 말하지 않은 채, 그저 몇 개가 필요한지 말하라고 답을 다그쳤다. 그러면서도 내가 어떤 답을 원하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.
- 굳이 설명하기에는 애도 아니고, 진작 알았어야 한다는 관념도 가지고 있었다.
같은 상황에서 아내는 다른 생각을 했겠지?
- 나는 어떤 건전지를 쓰려고 하는지, 언제 쓸지도 말하지 않았다. 그런데도 당장 필요해서 사 온 것이니 당연히 알아줄 거라고 여겼다.
관념부터 버려라. 화가 올라오면 바로 뒷걸음을 쳐라. 기대도 저버려라. 온전히 알고 있다고 믿지도 마라. 늘 처음처럼 대하고 실망하지 마라.
가르침을 내 안에, 내 삶에 적용하려니 잘 안된다. 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.
지금 돌아보며
지금 생각하면 아내는 내 질문에 더 많은 것을 생각하느라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. 하지만 그때는 그 모습이 화가 났다.
이 일은 아내와의 일로 끝나지 않았다. 그동안 나를 거쳐 간 직원들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. 나는 그들의 생각이나 사정보다, 내가 정한 기준에 맞는 답인지, 지식이 얼마나 깊은지, 경력에 걸맞은지를 내 주관적인 시선으로 재며 잘잘못을 따지고 있었다. 화를 낼 것이 아니라, 조금 더 이해하려고 애썼어야 했다.
이제 와서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할 수는 없다.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.
그날 일지 끝에 ‘이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’라고 적었다. 그때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여겼다. 이제는 안다. 그 시간 동안 꾸준히 앉았을 때, 비로소 해결되는 일이었다.
머물다 가는 한마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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